내시는 보통 구부정한 허리나 얇은 목소리 등으로 매체에서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극을 보다 보면 감초역할을 하는 내시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시의 특징들은 내시의 잃어버린 ‘그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한 문화예술 경매회사에서 오는 22일 내시족보 등 조선시대 내시 관련 문화재급 작품들이 출품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료는 내시의 삶의 한편을 엿볼 수 있는 희귀자료로 구성은 아름과 관직명, 태어난 해와 사망한 애, 묘 위치 등 일반 족보와 같다.
내시족보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집중 할 수 있다.
바로 내시들도 성생활을 하면서 부부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래에서 살펴보자.
조선시대의 내시는 고환이 없을 뿐 음경은 있었다.
거세를 언제 하느냐에 따라 발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중 2차 성징을 겪은 뒤 거세를 했다면 발기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고환이 없기 때문에 임신은 불가능했다.
이것과 같은 맥락에서 고환이 없기 때문에 ‘사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절정에 달하게 되면 엄청난 통증과 괴로움이 느껴졌다.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방의 어깨나 목덜미 등을 치아로 깨물었다고 하며, 향토사학자 김동복에 따르면 내시가 성관계 중 신체부위를 깨무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입으로 천을 동여매고 관계를 지속했다고 한다.
심하게 깨무는 경우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야반도주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비록 고환이 없음에도 내시들은 문란한 성생활로 성병에 감염 될 정도라는 기록도 조선말기에 언급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