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남탕과 여탕으로 남녀가 따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남녀가 함께 목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65년 전인 1853년, 우리와 같은 충격을 받은 미국 군인이 존재했다.
미국의 군인이며 흔히 ‘페리 제독’이라 알려진 매슈 캘브레이스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는 증기선 2척을 포함해 함선 4척을 이끌고 개항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 일본은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어 개항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무력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고 문을 열었다.
페리 제독은 일본과 강제로 미일화친조약을 맺고 일본을 개항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일본 땅을 밟은 페리 제독은 충격을 금치 못했는데, 그의 눈에 에도 시대의 일본은 무법과 야만으로 점철된 사회로 비춰졌다.
특히 그가 문화충격을 받은 것은 일본의 ‘혼욕문화’였다.
성인 남녀가 같은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목욕과 온천 문화가 발달했고, 에도 시대부터 대규모 온천이 생기며 혼욕 문화가 성행했다고 한다.
페리 제독은 이를 기록했다.
당시 일본의 온천은 유흥공간이나 다름 없었다고 폭로했다.
남녀들이 모여 사교를 즐기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는 것은 물론 매춘도 존재했다.
일본 온천에는 유나(湯女)라고 불리는 여종업원들이 있었고 이들의 존재는 곧 매춘으로 이어졌다.
‘유나’ 그리고 ‘매춘’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그려진 바 있으며, 과거 일본 사회에서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성 풍습의 일종이었다고 전해진다.
페리 제독은 이같은 문화에 충격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 ‘일본원정기’라는 책을 펴냈다.
페리제독은 ‘일본원정기’에서 남녀혼욕 문화와 일본만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특성을 상세히 묘사했다.
이후 일본은 메이지 시대 문명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혼욕문화가 사라지게 된다.
문호를 개방하고 나서 혼욕 문화가 퇴폐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현재 일본은 혼탕문화가 대부분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혼욕을 즐길 수 있는 온천이 남아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