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국가에서 관리해야하는 종류의 일종일까?
출산율이 떨어지며 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기존 정부의 논조는 “어서 애를 낳아라!”는 식의 강압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또한 최근 행정자치부의 ‘출산 지도’에서 정부는 국민을 마치 애를 낳는 가축처럼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성스러워야 할 ‘출산’을 국가 성장동력의 일환으로 취급하는 정부의 모습에 국민들의 반발심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는 국민에게 ‘출산’을 일방향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보면 말도 안되는 과거의 출산 장려 슬로건들을 소개한다.
#1 낳아라! 불려라! 국가를 위해! (1941년)
일제의 식민통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1941년은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착취하고는 했는데, 출산도 그 일환으로 생각하였다.
여성을 단지 전쟁을 수행할 ‘병사’를 낳는 기계로 취급했다.
이러한 인구증가 장려책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는다’는 목표로 출산을 강요했다.
#2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0년대)
한국 전쟁 직후인 60년대에는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인구가 많아져 먹을 것이 부족해졌고, 국가는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한다.
이때 국가는 ‘경제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개인의 자율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3 1,000불 국민소득의 길,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74년)
근본적인 문제가 녹아 있는 표제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은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4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1980년대)
80년대에는 경제 규모 대비 인구 수용 한계치를 초과한 시대였다.
정부는 본격적으로 피임 장려 캠페인을 시행했다.
#5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1990년대)
90년대에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던 시기다.
또한 본격적인 핵가족이 등장하며 ‘육아의 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던 시대였다.
이때도 정부는 ‘동생’을 ‘유산’에 비유하며 생명을 단지 자산의 일종으로 취급했다.
#6 1.2.3 운동 (2006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슬로건 중에 하나다.
1.2.3 운동은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5세 이전에 낳아 기르자”는 뜻이다.
당시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에도 반발심이 심했다.
슬로건을 본 한 누리꾼이 뒤에 4를 붙여 “40대에 파산하자”라는 문구를 추가한 일도 있었다.